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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행복교육의 숲 함께 걷는 배움길, 충청북도단재교육연수원이 함께합니다.

의열단 관련기사 < 의열단 관련기사 >

1918년 12월 만주 동삼성(東三省)에서 활동하던 중광단(重光團)이 중심이 되어 국외의 독립운동 지도자 39명의 명의로 '대한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다. 보통 '무오독립선언'이라고도 불리는 이독립선언에 단재도 주요 인물로 참여하였다. 이 선언서는 무력투쟁이 유일한 독립운동임을 선언하여 2ㆍ8독립선언이나 3ㆍ1독립선언과는 내용적으로 달랐다.

1919년부터는 국내에서 발생한 3ㆍ1운동의 여파로 중국에 망명해있던 독립운동가들이 상해에 모여 통합된 임시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단재는 임시의정원중 한사람으로 참여하면서 한성정부의 법통을 주장하였다. 논의가 계속되는 동안 임시정부의 초대 수반으로 이승만이 거론되자 단재는 그가'없는 나라마저 팔어먹어, 있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보다 더 나쁘다'며 격렬하게 반대하였다. 그러나 단재의 뜻과는 달리 의정원회의에서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추대되자 단재는 의정원 전원위원회 위원장을 사임하고 임시정부내의 준비론과 외교론에 대한 성토에 나섰다.

그러는 동안에도 단재는 대동청년단(大同靑年端)을 재건하여 그 단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였고, 대한독립청년단 단장, 신대한동맹단(新大韓同盟團) 부단주로 활발한 활동을 펴는 한편, 프랑스 조계 의영학교(義英學校) 교장이 되어 청년교육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여순감옥의 단재선생 < 여순감옥의 단재선생 >

임시정부와 맞섰던 신대한 사건을 계기로 상해 임정과 결별한 단재는 북경으로 돌아와 항일운동에 매진한다. 보합단(普合團) 조직에 참여하여 내임장(內任長)으로 추대되어 활동하는가 하면 독립운동의 행동대였던 '다물 단'(多勿團)의 고문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다물단은 우당 이회영의 조카 인 이규준이 몇몇 동지들과 만든 무장 1독립운동단체로 다물은 조국의 광복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었다. 단재는 이 다물단의 조직과 선언문의 작성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1922년에는 김원봉이 이끌던 의열단에 고문으로 가입한 단재는 의열단 선언인 '조선혁명선언'을 작성한다. 일제에 대한 비타협적인 폭력투쟁으로 일관하는 의열단은 단재의 운동정신에도 부합하는 단체여서 단재는 흔쾌히 6천 4백여자에 이르는 이 선언서를 작성하게 된다.

단재는 조국 독립운동의 결실을 민중혁명으로써 이룰 수 있다고 판단하고, 1924년 북경에서 처음 결성된 재중국 조선무정 부주의자연맹의 기관지인 '정의공보'에 논설을 실으면서 무정부주의 운동에 관심을 나타냈다.

이후 단재가 관여하였던 통일전선체 신간회 운동이 무산되자 단재는 무정부주의 운동으로 경도된다. 1927년 남경에서 수립된 무정부주의 동방연맹에 가입하였으며, 무정부주의 기관지인 '탈환', '동방'등의 잡지에도 관여하며 적지 않은 글을 기고하였다.



여순감옥 < 여순감옥 >

1928년 4월 조선인 무정부주의자들의 베이징 동방연맹대회부터 단재는 본격적으로 이 무정부주의 혁명운동에 참여한다.

1928년 재혼한 부인 박자혜와 아들 수범을 불러 얼굴을 본 단재는 무정부주의 운동의 본격적인 활동을 위하여 공작금 마련을 위한 투쟁에 나서게 된다. 결국 택한 방법은 외국위조 지폐를 만들이 이를 폭탄제조소 설치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단재는 중국인 유병택이라는 가명으로 일본에서 이 위폐를 교환하려 하였으나 발각되어 대만 기륭항에서 체포된다. 2년 동안의 재판을 통하여 단재는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죄수번호 411번을 달고 여순감옥에 수감된다.

형기를 3년 정도 앞두고 병이 악화된 단재는 결국 1936년 2월 21일 뇌일혈로 순국한다. 순국이전에 병보석으로 감옥문을 나설 기회가 있었지만, 보증인이 친일파라는 이유로 단재는 거부하였던 것이다.



일제로부터 우리 민족이 압박과 설움을 받던 시기동안, 수 많은 애국지사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살다 갔다. 그러나, 단재선생처럼 이론과 실천면에서 투철했던 지사는 드물었으며 특히, 일제와의 비타협적인 투쟁을 몸소 실천하다 끝내 감옥에서 순국한 선열은 더욱 드물다.

정보담당자
기획지원부 기획 299-6313